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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3.

    by. aha282ad

    목차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종교인의 관심을 넘어, 철학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반복되어온 인간 사유의 근본 과제다. 인간은 존재의 근거와 의미를 묻는 존재이며, 그 질문은 언제나 초월적 실재를 향해 나아간다. 신 존재 논의는 단지 신학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론·윤리·인식론 전반에 걸친 철학의 핵심 주제이며, 시대와 사상을 넘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온 사유의 중심축이다.

       

      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의문

       

       

      1. 신 존재 논의의 철학적 출발점: 왜 이 질문은 계속 반복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종교적 관심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철학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시작된 존재론적 탐구이자, 인간 정신이 가장 오래도록 마주해 온 사유의 과제다. 이 질문이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식과 자의식을 갖춘 존재로서,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결국 존재의 원천과 근거, 즉 초월적 실재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이 초월적 실재를 전통적으로 ‘신(God)’이라 불러왔으며, 신 존재에 대한 탐색은 곧 인간 존재에 대한 탐색과 동일한 문제로 여겨져 왔다.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이 단순히 육체적 존재가 아닌, 이성적 존재라는 점에서 신 존재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통해 가시적인 세계를 초월하는 절대적 실재를 상정했고, 그 이데아의 최상위 개념을 '선(善, the Good)'이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와 운동의 궁극적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라는 개념을 제시했으며, 이는 후대 신 존재 논증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신 존재에 대한 사유는 단지 신학의 영역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이 철학의 출발점인 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과제였다.

      특히 인간의 한계성, 죽음에 대한 의식, 도덕적 직관,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탄은 신 존재에 대한 질문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해 왔다. 인간은 자신보다 크고, 더 근원적인 무언가를 향해 질문하지 않고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신 존재를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입장조차도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신 존재에 대한 물음은 철학의 보편적이고도 필연적인 탐색의 대상이었다.

      근본적으로 신 존재 논의는 단지 “신이 있는가?”라는 사실 판단을 넘어, “신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 부여와 삶의 방향 설정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철학사에서 이 주제는 단 한 번도 완전히 폐기된 적이 없다. 오히려 신 존재의 문제는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질문되고, 비판되고, 해석되며 진화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신 존재 논의는 결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신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철학이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한 신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사고의 대상이다. 그것은 단지 신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지적 노력의 일환이다.

       

      2. 고전적 신 존재 증명들: 이성으로 신을 입증하려는 시도

      신 존재에 대한 질문은 인간 사유의 본질적 출발점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지 직관이나 종교적 체험에만 의존할 수 없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 이성의 논리적 구조를 통해 신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가를 탐구해왔다. 특히 중세와 근세의 신학자·철학자들은 단순한 신앙 고백을 넘어, 철학적 증명을 통해 신의 존재가 이성적으로도 타당함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전개하였다. 이 시도들은 오늘날까지도 ‘신 존재 증명’(proofs of God's existence)이라는 이름으로 철학과 신학의 교차점에서 중요한 논제로 다뤄지고 있다.

      가장 고전적인 신 존재 증명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운동하는 것은 원인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 운동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모든 것을 움직이는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궁극 원인을 의미한다. 이를 신학자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확장하여, ‘움직임의 근원’, ‘원인의 원인’, ‘존재의 필연적 존재’, ‘최고의 존재’, ‘세계 질서의 설계자’라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신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그는 이 다섯 경로(quinque viae)를 통해 신은 단순히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성과 질서 속에서 이성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대표적인 증명은 **안셀무스(Anselm)의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이다. 그는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하며, 개념적 사유만으로도 신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단지 인간의 사고 속에만 있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작다는 모순에 빠지게 되므로, 반드시 그 존재는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증명은 매우 추상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후대 철학자들—특히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현대의 알빈 플란팅가에 이르기까지—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물론 이 논증은 칸트에 의해 ‘존재는 개념이 아니라 실체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 존재 증명 중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정교한 논리로 간주된다.

      세 번째는 **도덕론적 증명(moral argument)**이다. 이는 임마누엘 칸트에 의해 대표적으로 발전된 논증 방식으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 법칙과 양심의 보편성을 근거로 한다. 칸트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려면 선과 악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그에 대한 ‘궁극적 보상과 정의의 실현’을 기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완전한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세계 질서가 존재해야 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선(Greatest Good)의 보증자로서 신의 존재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논리보다 도덕적 필연성에 기초한 신 존재의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설계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이다. 이 논증은 자연 세계의 복잡성과 정밀성, 목적성을 근거로 하여, 우주와 생명의 정교한 질서가 우연히 발생할 수 없으며, 설계자의 존재를 요구한다는 주장이다.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는 ‘시계공 비유’를 통해 시계처럼 복잡한 구조물은 시계공 없이 존재할 수 없듯, 자연의 정교함은 설계자의 흔적이라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이 논증은 다윈의 진화론 이후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현대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에서도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고전적 신 존재 증명들은 서로 다른 철학적 기반과 논리 구조를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신 존재를 주관적 체험이 아닌 객관적 논증의 대상으로 다루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물론 이 증명들이 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입증’했다기보다, 신 존재가 이성적으로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합리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증명들은 신앙의 기초로 사용되기보다는, 신앙이 무지나 감정이 아닌 철학적 사고와 양립 가능한 선택임을 보여주는 지적 변증의 도구로 기능한다.

       

      3. 근대 이후의 회의와 반론: 존재의 확신에서 불신으로

      근대 철학은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비판적 사유를 강조함으로써, 고전적 신 존재 증명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했다. 르네 데카르트, 프랜시스 베이컨, 토마스 홉스 등 초기 근대 사상가들은 경험과 이성에 기반한 인식론적 전환을 주장하였고, 그 결과 신 존재 논의는 더 이상 ‘전통적 권위에 대한 수용’이 아닌 ‘비판 가능한 사유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부터 신 존재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어야 하는 주장으로 요구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 존재 증명은 점점 더 강한 검증을 요구받았고, 철학은 존재에 대한 확신보다 의심에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흄은 고전적 신 존재 논증에 대해 결정적인 회의를 제기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설계론적 증명을 비판하며, 자연의 질서가 신 존재를 입증한다고 보기보다, 자연 그 자체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구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흄은 인과율의 개념 자체를 경험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우리가 어떤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은 반복된 경험에서 생긴 습관일 뿐, 필연적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로써 ‘원인의 원인’이라는 논리에 기반한 우주론적 증명은 그 기반을 잃게 되었고, 신 존재에 대한 사유는 논리적 증명보다는 인간 심리와 문화의 산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칸트 역시 고전적 증명에 대한 체계적 비판을 제시하였다. 그는 존재론적 논증에 대해 “존재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통해 반박하였다. 아무리 완전한 존재를 개념적으로 구성한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100개의 실제 동전’과 ‘100개의 개념적 동전’은 개념적으로 동일하지만, 존재의 사실성은 외부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념 자체가 존재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로써 칸트는 존재론적 증명의 논리 구조에 치명적인 허점을 지적했으며, 그 결과 이성만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철학계에 퍼지게 되었다.

      또한 칸트는 도덕론적 증명을 다루면서도, 신 존재는 이성의 인식 대상이 아니라, **실천이성이 요청하는 ‘포스트(postulates)’**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면, 그 도덕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질서가 존재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신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신은 실제 존재한다는 명제가 아니라, 도덕적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철학적 전제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런 관점은 신 존재에 대한 믿음의 지위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실천적 신념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이후, 철학은 더욱 깊은 회의와 해체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은 인간의 소망과 이상을 투영한 존재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학을 인간학으로 환원하면서, 신의 개념은 인간의 의식이 만든 자기 형상에 불과하다는 급진적 무신론을 펼쳤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 등도 신 개념을 권력 구조, 무의식, 도덕적 억압 장치로 해석하며, 신 존재의 철학적 기반을 더욱 약화시켰다. 특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 존재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해방을 방해하는 허위 의식의 상징이라 규정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신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그치지 않고, 철학이 초월적 실재를 사유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인식론적 질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20세기 실증주의와 분석철학의 흐름은 이 경향을 더욱 강화하여, 신 존재는 논리적으로 무의미하거나,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이므로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까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하며, 신 존재 논의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제라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근대 이후의 철학은 고전적 신 존재 증명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했으며, 신의 존재는 더 이상 ‘합리적 증명’의 영역에서 논의되기보다, 주관적 신념·윤리적 전제·문화적 산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와 해체 속에서도, 신 존재의 질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이 질문이 새로운 철학적 맥락에서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 신 존재는 단지 논리적 증명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론과 인식론, 의미론을 아우르는 총체적 사유의 과제로서 재부상하고 있다.

       

      4. 현대 철학에서의 신 개념 재해석: 인식과 존재를 넘는 차원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실증주의적 흐름은 철학을 언어와 과학의 분석에 국한시키려 했다. 그 결과 신 존재는 더 이상 철학의 합법적 주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고, ‘의미 없는 진술’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철학은 인간의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며 다시 초월적 실재의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은 논의할 수 없다는 선언이 오히려 신에 대한 철학적 재성찰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후기 분석철학 등 다양한 철학적 흐름에서 신 개념은 전통적 신학의 틀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되었다.

      현상학을 창시한 에드문트 후설은 의식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지만, 그의 사상을 계승한 막스 셸러에디트 슈타인 등은 의식의 지향성(intention)을 통해 신적 실재에 대한 체험과 직관의 가능성을 사유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직접적으로 신 존재 증명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존재론은 “존재 자체의 은폐와 드러남”이라는 구조를 통해 ‘신적인 것’에 대한 열린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그는 존재와 시간의 지평 너머에 있는 어떤 궁극적 차원을 ‘존재의 진리’로 파악하였으며, 이를 통해 전통적 신 개념을 해체하는 동시에 더 깊은 차원의 사유로 인도하는 철학적 통로를 제시했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거룩한 것에 대하여』에서 신은 이성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인간이 경험하는 “신비하고 두려우며 매혹적인 것(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 존재는 개념적으로 논증되기보다, 경외심과 감정, 실존적 체험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초월적 실재라고 보았다. 이 사유는 신 존재 논의를 인식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 실존, 체험이라는 다차원적 조건 안에서 다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현대 기독교 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신을 단순히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Ground of Being)**로 규정하였다. 그는 “신은 최고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라며, 전통적 유신론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심화의 길을 열었다. 틸리히에게 신은 인간이 신앙의 궁극적 관심을 기울이는 그 무엇이자,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다. 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계신,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가진 존재로서의 신 개념을 제시한다. 이 사유는 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더 이상 단순한 유무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론적 깊이와 인간 내면의 구조와 얽힌 초월성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는 ‘개혁주의 인식론’을 통해 전통적 신 존재 논증과는 다른 차원에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새롭게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기초 신념(basic belief)이며, 특별한 논증 없이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신 존재가 반드시 증명되어야만 합리적일 수 있다는 전제를 거부하며, 신에 대한 신앙은 자연스럽고 정당한 인식의 한 방식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전환을 의미했다. 플란팅가의 이론은 현대 기독교 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신 존재를 둘러싼 인식론적 불균형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큰 의의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후기 현대철학에서는 언어와 담론, 존재의 개방성 속에서 신 개념을 완전히 폐기하기보다는 유보하거나 열어두는 경향이 나타난다. **장 뤽 마리옹(Jean-Luc Marion)**은 『신 없는 신학』과 『주어진 것에 관하여』에서 신은 인간의 인식 구조를 초과하는 ‘포화 현상’(saturated phenomenon)으로서, 어떤 개념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절대 타자라고 말한다. 이처럼 신은 더 이상 단순한 존재나 개념이 아니라, 인식 너머에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주는 실재’로 이해된다.

      요컨대 현대 철학에서 신 개념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조건과 인식의 구조 속에서 초월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되었다. 신은 논리적 논증의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 실존과 인식의 지평 너머에서 가장 깊은 문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로써 신 존재 논의는 단지 고전적 증명의 한계 너머에서, 존재와 인식, 의미와 체험의 교차점으로서 철학적 여정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신 존재의 사유, 여전히 철학의 가장 깊은 중심

      신 존재에 대한 물음은 단지 신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 할 때 피할 수 없는 철학적 과제다. 고전철학은 이성을 통해 신을 논증하고자 했고, 근대철학은 그 시도를 비판하며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현대철학은 오히려 그 한계 너머에서 신 개념을 다시 사유하기 시작했다. 신은 더 이상 단순히 ‘존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 의미의 근거, 실존의 지향으로 작동한다. 결국 신 존재에 대한 탐구는 지금도 여전히 철학의 가장 깊은 중심에 놓여 있으며, 그 사유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