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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왜 인간은 악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은 오랜 세월 철학과 신학의 중심 주제였습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하신 분이라면, 왜 인간이 죄를 짓도록 허용하셨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가 필요했습니다. 이 물음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입니다. 그는 고대 교부 철학자 중에서도 가장 체계적이고도 정교하게 인간의 자유의지와 죄의 책임을 설명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자유로운 의지를 부여받았으며, 죄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인간 스스로 잘못 사용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죄가 운명이나 외부 강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철학적‧신학적 입장을 확립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이 무엇인지, 어떻게 죄의 기원을 설명하며,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인간 책임의 본질과 현대적 함의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와 문제의식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혼란한 로마 말기 시대를 살면서 기독교 철학과 신학의 틀을 정립한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마니교라는 이단적 이원론에도 빠졌던 인물입니다. 마니교는 선과 악을 각각 독립된 실체로 보았고,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를 악한 물질세계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러한 이원론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제거하고, 구원도 외적 힘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회심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를 강력히 비판하며, 죄의 원인을 인간 내부의 의지에서 찾기 시작합니다. 그는 철학적,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타락한 자유의지 때문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 본인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후대 기독교 윤리학과 구원론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게 됩니다.
2.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의미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는 단순히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즉 방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유의지를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도덕적 선택의 가능성으로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인 인간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한 자동 기계처럼 프로그램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도덕성과 인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그 일환으로 자유의지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사랑에 자발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순종과 불순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posse peccare, posse non peccare)”에 있었다고 봤습니다. 즉, 인간은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도덕적 중립성 속에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사용할 때만 온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 자의적으로 사용될 경우 쉽게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를 선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취약성을 동시에 지닌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인간은 그 자유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 대신 자기중심성에 사용했고, 이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유의지론은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며,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외적 운명이나 악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결단 때문”이라는 점을 철학적으로 분명히 해줍니다. 이는 후대 기독교 윤리학과 구원론, 심지어 현대의 형법과 교육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3. 악의 본질: 결핍과 왜곡으로서의 악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바로 악의 본질입니다. 그는 악을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고, 선의 결핍(privatio boni) 또는 질서의 왜곡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관점은 고대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기독교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이고, 병은 건강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이처럼 악도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선이 존재해야 할 자리에 그것이 부재하거나, 올바르지 못하게 뒤틀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완전하신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본래 악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은 자유로운 피조물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왜곡할 때 발생합니다. 즉, 인간이나 천사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한 자유를 자신의 욕망이나 교만에 따라 사용할 때, 그 결과가 곧 악인 것입니다.
그는 특히 **교만(superbia)**을 최초의 죄로 지목합니다. 교만은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는 태도이며, 이는 곧 모든 악의 시발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교만에 기인한 것이며, 이는 자유의지를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이원론적인 악 이해(즉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대립)를 철저히 부정하며, 하나님이 모든 악의 창조자라는 비난에서 하나님을 철학적으로 변호합니다. 또한,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면서, 오늘날에도 “악한 행위는 외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과 교만에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4. 타락 이후의 자유의지: 구부러진 의지와 은혜의 회복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자유의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의 자유의지는 더 이상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온전한 능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구부러진 의지(curvatus in se)’라고 표현하며,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굽어진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인간이 여전히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선택이 항상 죄의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내적 성향을 가진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이뤄낼 힘은 부족하며, 오히려 자아 중심적 욕망이 더 쉽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원함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로마서 7:18)와 일맥상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gratia)**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타락한 자유의지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인간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고, 이러한 주장은 후에 종교개혁의 교리적 기초가 됩니다.
이와 함께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자유의지와 은혜의 관계에 대해 섬세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는 은혜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거나 강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회복시키는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의지는 죄로 인해 속박되어 있지만, 은혜를 통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오늘날에도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전한 도덕성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맞물려, 인간 존재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5. 현대적 함의: 인간 책임과 도덕적 자율성에 대한 통찰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은 단지 고대 기독교 철학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많은 윤리적, 사회적, 심리적 이슈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인가?", "책임은 어디까지가 개인의 몫인가?" 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며, 죄와 악은 외부의 강제나 필연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왜곡시켜 선택한 결과라고 단언합니다. 이 관점은 다음과 같은 여러 현대적 영역에 실질적인 함의를 가집니다.
5-1. 교육과 도덕 훈련: 책임 윤리의 회복
현대 교육은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학생들의 도덕적 자율성과 책임감을 기르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도덕 교육이 단지 외적 규율이나 감정적 설득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선택 훈련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그는 모든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도덕적 존재라고 봅니다. 따라서 자녀나 학생을 교육할 때, 단순한 복종이나 처벌이 아니라 내면적 결단과 자율성을 기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예컨대,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선택의 결과를 함께 분석하고 성찰하게 하는 교육 방식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자유의지론과 일치합니다. 인간의 자유는 무조건적인 권리가 아니라, 선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하는 책임이라는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교육 현장에서 살아 있는 철학입니다.
5-2. 심리학과 자기 이해: 변명 대신 회복을 향한 첫걸음
현대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외부 요인과 내적 심리구조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이는 많은 부분에서 인간 이해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설명들이 개인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오용될 위험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내면, 특히 의지의 방향성과 동기에 대해 깊이 성찰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가 단지 유혹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오늘날 “나는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말에 내포된 책임 회피적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선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며, 은혜에 기초한 회복을 강조합니다. 이는 현대 심리학이 추구하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과도 통하는 지점입니다. 자신의 타락한 본성과 한계를 직면하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려는 성찰은 곧 신앙과 상담의 접점이 되기도 합니다.
5-3. 형법과 사회 정의: 책임의 범위를 묻는 법적 철학
형법 체계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는 행위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입니다. 청소년 범죄, 정신질환자의 범죄, 반복적인 폭력 등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경계를 시험하는 문제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은 여기서도 적용 가능합니다. 그는 자유의지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보면서도, 그 자유는 방향을 잃고 왜곡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법적 판단에서 개인의 책임과 구조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통합적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악한 행동은 그 자체로 자유의지의 표현이지만, 왜곡된 자유의 산물’이라고 봤기에, 범죄자를 단순히 악인으로 정죄하기보다 그들이 왜 그렇게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자유였다면, 그에 대한 일정한 책임도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오늘날의 형법, 교정제도, 재활 프로그램 등이 단순 처벌을 넘어 개인 내면의 변화와 자발적 선택 회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매우 실천적입니다.
5-4. 신앙과 실천: 자기 성찰과 참된 회개의 기반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은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부분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죄를 반복하는가?’,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때, 그의 사상은 실천적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서 회개가 출발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보여주는 회개의 본질입니다.
그의 자유의지론은 단순히 이론적 설명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진실하게 마주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었어’가 아니라, ‘나는 원했고, 잘못 선택했다’는 고백이야말로 은혜를 경험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특권이며 책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은 철학과 신학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신학적 계시를 바탕으로, 죄의 기원을 신중하게 탐색했고, 인간이 악을 선택하는 이유를 자유의지의 오용으로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악의 창조자가 아님을 변호하면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를 조화롭게 연결해낸 탁월한 통찰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단순한 자율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철학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자유는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온전히 선을 위해 사용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다움과 신 앞에서의 겸손함을 회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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