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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16.

    by. aha282ad

    목차

      기독교 철학의 응답

       

      “왜 선하신 하나님이 이토록 많은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에게도 이 질문은 깊은 인문학적 사유를 요청한다. ‘악의 문제’(Problem of Evil)는 단순한 신학적 난제가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가장 복잡하고 도전적인 영역이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전능성, 전지성, 선하심이라는 세 가지 속성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악 사이의 긴장으로 요약된다. 즉,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선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기독교 철학은 이 난제에 수세기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해왔다. 본 글에서는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들의 관점—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플랜팅가—을 중심으로 악의 본질과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논의를 조명하고, 오늘날 신앙인이 이 문제 앞에서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1. 악의 문제란 무엇인가: 철학적 정식화

      철학에서 말하는 ‘악의 문제’는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논거로 자주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제기한 고전적 정식화는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인용된다. 그는 “신이 악을 없앨 수 없으면 무능하며, 없애고 싶지 않다면 악하다. 만일 둘 다 아니라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선하심이 실제로 존재하는 악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데이비드 흄, J.L. 매키, 앤서니 플루와 같은 근·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특히 매키는 악의 존재가 기독교 신의 개념과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악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는 기독교 신학과 철학에 거대한 도전 과제가 되었다.

      한편, 경험적 악의 문제는 실제 세계에서의 막대한 고통과 비극을 근거로, 그런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신이 과연 선한 존재인가를 묻는다. 예컨대 전쟁, 질병, 자연재해, 아동의 고통 등은 단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실존적 고통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악의 문제는 단지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신의 성품과 인간의 존재 목적에 대한 총체적 성찰을 요청한다.

      기독교 철학은 이 문제에 ‘신정론’과 ‘방어’라는 두 방향으로 응답한다. 신정론은 악의 존재를 하나님의 정의와 조화롭게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방어는 신의 존재와 악의 공존이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님을 보이려는 논리적 대응이다. 이 둘은 모두 악의 문제를 단지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과 세계관의 일관성을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 – 악은 실체가 아닌 결핍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철학에서 악의 문제를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젊은 시절 만니교와 플라톤주의, 스토아 철학 등 다양한 철학 체계를 탐색했으며, 그 경험은 악의 본질에 대한 그의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결국 “악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라는 해석을 통해 기독교 신정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의 주장은 철저히 존재론적이다. 하나님은 선하고 완전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악은 선의 창조물에서 파생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그 선함이 훼손된 상태, 즉 질서의 결핍으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어둠은 빛의 부재이며, 냉기는 열의 부재와 같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은 악 역시 실체적이기보다는 ‘없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존재론적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함을 유지하면서도,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허락한 선한 선물이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악이 발생한다는 논리를 통해 도덕적 책임을 인간에게 전가시켰다.

      이 해석은 후대 기독교 신학자들과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중세 이후의 신정론 전개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는 악의 존재를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신의 정의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

      3. 토마스 아퀴나스 – 조화와 목적 속의 악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반으로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악의 신정론을 정립하였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선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전체는 부분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를 통해 악을 설명한다. 즉, 하나의 존재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전체 창조 질서가 악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불완전성이 전체 질서 안에서 특정한 조화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천둥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은 개별적 관점에서는 파괴적이지만, 전체 생태계의 순환이나 에너지 균형을 고려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또 신은 악을 직접 의도하거나 창조하지 않지만, 악을 통해 더 큰 선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아신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고통은 인간의 영적 성장이나 죄의 결과에 대한 경고로서 작용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회개와 구원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악을 무조건 회피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로 보기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의미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 하나님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며,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적 지혜에 의존해야 한다는 교훈을 내포한다. 아퀴나스는 악을 우주적 조화 속에서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신의 선하심을 보존하면서도 현실 세계의 고통을 철학적으로 수용하는 틀을 제공하였다.

      4. 알빈 플랜팅가 – 자유의지 방어와 현대 신정론

      알빈 플랜팅가는 20세기 후반 이후 기독교 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신 존재 논증과 더불어 악의 문제에 대한 응답에서도 독보적인 기여를 남겼다. 그는 철학적으로 정교한 ‘자유의지 방어’를 통해 논리적 악의 문제에 대응했으며, 이는 이후 논의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플랜팅가는 논리적 악의 문제에 대한 무신론자의 주장—즉 “전능하고 전지하며 선한 하나님과 악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그는 “하나님이 도덕적 자유를 가진 존재를 창조하셨다면, 그 존재가 악을 저지를 가능성 또한 허용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때 하나님은 악을 의도하지 않았으며, 강제할 수도 없는 논리적 제약 안에서 자유와 악의 가능성을 동시에 허용하신 것이다.

      그의 방어는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자유와 전능성은 어떻게 양립하는가?”라는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질문에 응답한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진정한 도덕적 자율성을 부여하셨기에, 그 결과로 발생하는 악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논리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유의 산물’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플랜팅가는 ‘도덕적 훈련장’으로서의 세상을 설명하며, 고통과 악이 인간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악을 긍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철학적 응답이다.

      5. 악을 통한 신정론적 성찰: 고통 속 신앙의 의미

      기독교 철학에서 악은 단지 해명되어야 할 개념적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삶의 현실이다. 고통은 인간을 하나님의 존재 앞에 세우며, 신앙이 진정한 의미에서 작동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통 없는 신앙은 검증되지 않은 신념일 수 있지만, 고통을 통과한 신앙은 더욱 정련되고 순수해질 수 있다.

      욥기의 이야기에서 보듯, 욥은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며 다스리신다는 점에서 침묵하고 경배하게 된다. 이러한 신앙은 이론적 신정론이 아니라, 고통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하는 실존적 응답이다.

      현대 기독교 철학자들은 ‘고통의 신학’ 또는 ‘연대의 윤리’를 강조하며, 악과 고통에 대한 응답은 설명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이때 기독교는 단지 악의 기원을 설명하는 종교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서서 그들의 절망 속에 의미를 만들어가는 실천적 철학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정론은 악을 합리화하는 것도,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도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려는 지적·신앙적 노력이다.

       

      악의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오래되고 깊은 사유 대상이다. 그것은 단순히 철학적 난제를 넘어, 인간 존재의 고통과 불완전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존재의 결핍으로 해석했고, 아퀴나스는 우주의 조화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았으며, 플랜팅가는 자유의지와 인격적 관계의 관점에서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처럼 다양한 사유들은 악의 존재가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와 충돌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악은 신정론적 성찰과 윤리적 책임, 실존적 신앙을 요청하는 하나의 계기다. 기독교 철학은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묻고 응답하려는 사유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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